내일 눈 오면 좋겠다
내일이요?
응
왜 하필 내일이에요?
너랑 눈 보고 싶어서
그건 내일 아니어도 언제든 할 수 있잖아요...
카쿠쵸가 말끝을 흐리며 대꾸하니 키세키가 웃어보여 요즘 부쩍 상처가 늘어난 낯으로 미소 지으면 엉망인 꼴에도 어째 그 웃음만은 채도가 밝아서
왜 내일이지 생각해보면 키세키는 늘 정확하게 뭔가를 지칭하지 않았어 이름을 알면서도 걔 아니면 그 사람이라든지 시간이랑 날짜도 어영부영 얼마 뒤에 며칠 후에...
내일이요
응, 내일
...내일은
...
눈 올 거예요
다음날 눈은 오지 않았고 키세키도 오지 않았어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어 그때 키세키한테 필요했던 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었던 거겠지 무슨 짓을 해도 날 사랑해줄 사람이 아니라
시체를 처리하고 집을 청소해서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았지만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연고자가 있는 이상 실종 신고는 들어갈 거고 수사는 진행되니 들키는 것도... 시온과 적당한 인맥 동원해서 준비할 시간 정도는 벌었으니까 바로 도쿄를 떴던 건 아니야 구석진 모텔에서 혼자 지내며 어디로 도망갈지 그 지역으로 가면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하는지 집은 생계는 와중에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네 꼴에... 싶지만서도
역시 위로 갈까 더운 거 싫으니까 추운 게 좋아 눈이 잔뜩 오면 좋겠어... 정말이지 바보라니까 더위를 많이 타면서도 여름을 가장 사랑하던 아카네는
관동사변이 절정을 찍은 새벽에 키세키는 삿포로에 가기 위해 역사에서 캐리어 하나 달랑 가지고 열차를 기다렸어 문득 느낀 기시감에 뒤를 돌아봤다가 뻥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이 내리더라고 도쿄에는 눈이 잘 안 오는데 우습게도 그날 눈이 왔어 정말 우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