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텐더의 회고록

늘 혼자 오는 여자는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밝히지 않지만 내가 바텐더로서 의무를 지키기 위해 떠드는 말에 대꾸를 잘했다 가끔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화법을 쓰며 변덕을 부린다 알 수 없는 여자라는 생각만 자꾸 들게 만들어 정말 미스터리 그 자체다 하지만...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패턴은 언제나 비슷하다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바 테이블 가장 끝에 앉고 일행은 없다 첫방문에는 추천을 받았는데 여성분이라 부드러운 칵테일을 위주로 권했다가 웃는 낯으로 대꾸를 하지 않은 탓에 메뉴를 바꾸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자가 두 잔을 마시면 귀신같이 입구에 종소리가 울린다 여자를 데리러 온 남자가 왔다는 소리다 여자는 바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어디든 연락을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오는 건지... 데리러 오는 남자는 두명 얼굴에 흉터가 있다 대부분 이마에 가끔은 입가에

이마에 흉터가 있는 남자는 다정하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하며 말투까지 전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아니, 영혼이 담겨있지 않다 ...한낱 바텐더 주제에 다정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 문장을 정정한다 이 여자 외의 사람에게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입가에 흉터가 있는 남자는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으나 내게도 살갑게 말을 붙일 때가 있다 다만 대화 주제가 이상해서 나는 말을 이어가기 어렵다 여자와의 대화도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여자는 잘만 받아친다 신기할 지경이다

남자가 어깨에 팔을 두르면 여자는 나갈 채비를 한다 계산은 현금으로 잔돈은 팁 지나치게 많을 때는 부담스러움에 멋쩍게 웃는데 따라 웃어주고는 나가버린다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이다

미신이라해도 믿는 사람이 있는 불길한 숫자와 요일에 비가 온다 이미 장마가 지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쏟아지는 폭우 오늘 여자는 우산이 없었는지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을 하고는 바에 들어왔다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물을 툭툭 털고는 바에 앉았다 따뜻한 물수건을 건네니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그가 유독 힘들어보였다 무슨 일 있었냐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테니 나는 질문 대신 여자가 자주 마시던 진 온더락을 내왔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자가 대뜸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적잖게 놀랐지만 평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다 들통났을 것 같긴 하지만...

오늘이 언니의 기일이다, 하필이면 13일의 금요일에 비까지 온다, 집에서 불이 났다,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는데 살리지 못했다... 친언니? 어느 집? 불? 누가? 자신이? 궁금한 건 많지만 묻지 않았다 침묵을 유지하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가 언니에 대한 말을 늘어놓다 말고 갑자기 뚝

제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
언니는 돈이 없었어요
...
저는 돈이 있었는데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금 맥락없이 말을 이어갔다 돈은 무슨 상관이며 그게 어째서 자신이 죽였다는 발언까지 이어지는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단 하나만 알 것 같았다

그는 슬퍼보였다

갑자기 이런 얘기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끝으로 여자는 남자가 데리러 오지 않았는데도 아직 마르지 않은 겉옷을 챙겨 입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네요. 내가 덧붙이자 여자는 몰래 나온 거라 빨리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지만... ...

자유롭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그의 눈이 슬퍼보였을 뿐이다

지금 누군가 현관을 두드린다 어째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 그런 것일까?

저날 집에 들어간 키세키 산즈랑 대판 싸웠어 말없이 나간 거 때문에 말다툼 좀 하다가 분위기 타는데 키땅은 지금 할 기분 아니라 하고 산즈는 내가 언제부터 니 기분 신경써줬다고... 함서 옷 벗기려다가 발로 얼굴 걷어차여서 어이 털려서 할 말 잃는...

십 년이나 같이 지냈으면 신경 좀 쓸 때 됐잖아 개자식아
...
내가 널 얼마나...

...됐어. 키세키는 그대로 비에 젖은 몸 씻으러 가버리고 산즈는 자기가 뭔가 실수한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어서 카쿠쵸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봐 오늘 무슨 날이냐고

그건 왜
모르면 됐다
... 아, 어제 기일이었네
누구?
이누이 아카네

자정 지나서 어제 체감으로는 오늘이나 다름없는 언니의 기일 아 씨발... ... ... 좆됐네 한숨 푹 쉬는 산즈에 카쿠쵸가 잘 달래줘. 하겠지 산즈도 한참 대답 안 하다가 너 오늘 안 들어오냐? 할 일 있어서. 그래. 하고는 전화 끊어버려

씻고 나온 키세키 머리도 안 말리고 냅다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서 멍때리는데 산즈가 들어와서 안 자냐? 물어보면 대꾸도 안 해 산즈 헛웃고는 뒤에서 키땅 목 감싸안고 기분 안 좋으면 잠이나 자라 하는..

예전에
...
이러고 잠들고 일어나면 항상 넌 내 곁에 없었어
그랬나

오늘은 있어줘
알겠어
...
약속할게
미안해서 그래?
딱히
미안하다는 말 할 줄 모르지?
너도 마찬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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