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사랑을 받아 평범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키세키는 대학에 갔을 거예요 바로 취업했을 것 같진 않고요 전공은 확신할 수 없다만 워낙 하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인데다 어떤 분야에서든 필요 이상의 재능을 보이니 악기를 다룰 것 같기도 하고요 손을 많이 쓰는 것 활을 쥐고 싶어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하프가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카쿠쵸에게도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요 역시 몸 쓰는 게 어울려요 인간의 선의를 믿기 때문에 경찰 같은 공익을 위한 직업을 가질 수도요 다만 어제 꾼 꿈에서 카쿠쵸가 수영 전공의 체대생이었던 관계로... 어차피 존재하지 못할 세계이니 제 무의식의 취향대로 가보려고요

 

체대생 카쿠쵸 이 한 단어로부터 그 어떤 거리감도 느낄 수 없다는 게 흥미롭네요... 대학생 수영 강사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잘하면 첫사랑 수영 선생님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워낙 시원시원하고 장난기 많으니까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잘 어울려줄 거예요

 

반면 음대생 키세키는 좀 웃겨요 흥미롭긴 한데 이제 약간 다른 방향의 흥미인 거죠 사랑받고 자랐으니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랑이 지금보다 더 많을 거예요 완전히 혼자 지내진 않아도 적당히 선을 그어가며 좋은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이상적인 이십대 초반의 삶을 살고 있겠네요

 

둘은 여전하게도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 제 3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을 거예요 사람을 좋아하는 카쿠쵸와 사람을 불신하는 키세키라서 키세키는 부러 인맥을 늘리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들 좋다고 와주는데요 굳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주 오만한 사고방식이에요

 

그런 이유로 접점이 생긴다면 키세키와 이미 친분이 있었던 누군가로 인해서겠죠 카쿠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수영장에 키세키의 사촌 동생을 퐁당 빠트려 봅시다 키세키는 의외로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거든요 그날도 자신을 너무 좋아하는 사촌동생의 수영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거예요 이윽고 락커룸에서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오는 동생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나가 머리 바싹 말리고 나오라 했지, 감기 걸린다고. 헤헤 웃는 사촌동생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는 키세키가 이모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요구는 가볍게 무시해요

 

그런 동생의 뒤를 따라 나오던 카쿠쵸가 있습니다 문득 고개를 뒤로 돌렸던 동생이 환히 웃으며 손을 휘젓고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해요 키세키의 시선은 아래에서 위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눈이 마주치면

 

어라

꼭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아요 그런데 뺨을 살짝 붉히며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카쿠쵸의 낯이 익숙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꼭 다른 세계의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너의 존재

 

첫만남은 뻔한 클리셰가 어울리잖아요 실제로 어딘가의 둘은 언제나 마음이 이어져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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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 인생이어도 너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우린 안 되는 거야

 

키세키가 카쿠쵸에게 완전히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어요 상황을 밀어낸 적은 없거든요 그래서 카쿠쵸가 꿋꿋하게 들이댄 걸수도 있고요 카쿠쵸는 타인의 기분이라든지 본능적이고 기이한 감각을 알아채는데 뛰어나거든요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혐오스러워하는지...

 

분명 느꼈을 거예요 키세키로부터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을 귀티나는 부잣집 아가씨가 스케반 무리와 어울려 지내는 것 집에 들어가기 귀찮다는 말버릇 얘기 중 가끔 튀어나오는 누군지 모를 언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과 퍼렇게 물든 광대뼈가

 

괜찮아요? 뭐가? 상처. 다치는 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쩌다가 그랬어요. ... 대답하기 싫으면 됐구요. 으응.

 

이래서 안 되는 거야 너는 날 너무 사랑해서 내게 최대한의 절망을 선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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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사변은 키세키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때 도쿄에 있지도 않았고... 애초에 양키 집단들의 싸움에 키세키가 엮일 이유가 없죠 더군다나 키세키는 다른 지역의 스케반 무리에서 지냈으니까 카쿠쵸와 시온을 제외하면 천축과 접점도 없었어요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주제에 카쿠쵸의 어깨에 남은 총상을 보면 괜히 가슴이 미어져요 카쿠쵸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꾸는지 이따금 식은땀이 흐르고 상체가 들썩거려요 맨살에 따뜻한 제 손을 얹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카쿠쵸가 억세게 손을 잡아채도 눈 깜짝 안 하고 무감히 바라만 보고요

 

이제는 고통이 두렵지 않아요

그럼 무슨 악몽을 그렇게 꿔

죽는 꿈이요

죽음은 두려워?

저 말고요

...

...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키세키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아의 유대감 그의 이름을 곱씹은 카쿠쵸가 다시 눈을 감아요 푹 자 좋은 꿈도 꾸지 말고 우린 그럴 자격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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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 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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