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키가 떠올리는 자신의 청춘과 카쿠쵸가 떠올리는 자신의 청춘의 시점은 완벽하게 다르다는 점이 좋아요

 

키세키 씨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카쿠쵸를 만나기 전의 과거를 떠올렸기 때문이겠죠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흐릿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세키와 눈을 맞춰요 내친김에 입도 맞추고 나면 밀려오는 당신의 슬픔

 

사랑받고 싶지 않다면 제 사랑에 당신의 절망을 덧씌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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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즈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처음부터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목적으로 대장을 따라갔고 평생 따르고 싶은 자신의 우상에게 더이상 밉보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그의 장기말이 되기 위해서요

 

그래서 키세키에게는 표정을 가릴 필요가 없는 거예요 키세키가 산즈에게 솔직했던 만큼 산즈도 키세키에게 솔직한 편이었을 겁니다 그를 이용하여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없으니까요 키세키를 도쿄에 붙잡아둔 것에도 큰 의미가 없었고요

 

이래서 사랑이 싫은 거예요 같잖은 감정 하나에 휘둘려서 평소 하고 싶었던 행동을 하게 만드니까요 뭐든 숨겨야만 했던 산즈가 거짓말을 안 하게 되니까요... 다만 넌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된다고

 

철저하게 남을 이용해먹던 산즈는 원하는대로 휘둘려주는 키세키를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원래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는 여자가 취향이긴 했습니다만

 

결벽증도...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생긴 후천적인 버릇 중 하나이겠죠 아주 심각한 편은 아닐 것 같아요 평소 대원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에 딱히 거리낌이 없어 보였고 무쵸의 가죽 자켓을 걸쳐 입기도 했으니까요 아마 타인보다 자신과 자신의 공간, 물건에 집착하는 타입이겠죠

 

산즈는 자신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으니까요 발할라로 떠나는 바지에게 트리트먼트 어쩌고 질문했던 것도 그렇고 (ㅋ) 남이 제 물건을 건드리고 나면 소독 티슈로 벅벅 닦는다는 것도... 이건 결벽증의 개념보다는 자신은 언제나 제게 그리고 마이키에게 완벽한 인간이어야 하는 병적인 집착 아닐까요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손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끼지 않는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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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키세키와 산즈가 더 어렸을 때 처음 만났더라면 둘이 함께 맞이할 또다른 미래가 생기지 않을까 키세키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만약에... ... 가장 혐오하는 문장의 도입부

 

만약에 아카네가 죽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부모님을 죽이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너랑 너랑 너랑 너랑 너랑

 

사랑을 했다면 뭐가 달라졌으려나...

 

산즈를 보며 환하게 웃는 키세키의 모습은 흔치 않아요 산즈의 낯이 일그러지면 웃고 싶다고 말은 하는데 결국 웃지 못하거든요 분노 아닌 슬픔은 전염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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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암막 커튼 치고 자는 거 깜빡했네 메마른 입을 뻐끔거리면 들어차는 불쾌한 공기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한 햇살 주변을 둘러보면 감도는 적막이 익숙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까지 전부

 

어느 미래에서의 셋은 한 지붕 아래 함께 지낸다 했죠 아무래도 남자 둘이 반사 소속이라서 이동이 잦고 거처를 자주 옮겨야 해서 셋이 함께 사는 곳을 '집'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가끔 돌아가고 싶어지는 공간 안식처 이상의 의미는 가질 수 없습니다 위험하니까요

 

키세키는 집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처지예요 이 시기쯤 키세키 일가 실종 사건 공소시효가 얼마 안 남았던지라 더 사렸고요 ... 둘 중 하나라도 옆에 끼지 않으면 본인도 외출을 꺼려했습니다 마치 낯선 이국의 땅을 밟는 어린 아이처럼 머뭇거리게 돼요

 

그런 이유로 집이 될 수 없는 허나 유일한 안식처에는 키세키 혼자 머무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잠든 사이 새벽에 카쿠쵸가 왔다가 아침이 밝아 눈을 뜨기도 전에 도로 나가버리고 어쩔 때는 대낮에 갑자기 산즈가 찾아오기도 하고요 완전 멋대로죠 ...일이 바빠지면 이주 삼주 한달 방치되는 것도 익숙해질 법하지만 키세키는 아직 자신의 고질적인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했어요 자주 울었습니다 가끔은 소리도 질렀고요 목이 터져라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더 절망적이에요 이럴 거면 따라오지 말걸 그랬어요 무슨 바람이 들어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집에 오고 만 거예요

 

일이 터진 건 공소시효까지 반 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범천의 수령이 죽었습니다 드물게나마 얼굴을 비추던 카쿠쵸가 다시 자취를 감췄어요 오랜만에 본 카쿠쵸의 낯이 새하얗게 질린 터라 상황이 많이 안 좋냐고 묻자 키세키의 품을 한가득 끌어안아요 ...금방 올게요. 금방 못 온다는 거겠죠 주먹을 꽉 쥐었다 푼 키세키가 입을 뻐끔거리다 맙니다 암막커튼을 치고 자는 것을 깜빡한 오늘 아침처럼...

 

인간은 왜 숨을 쉬면 살아있는 것일까요 이게 사는 거라면 죽음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평생 지닐 의문이에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비록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해도 지금 자신이 죽음과 가장 가까운 형태라는 것은 알 수 있어요 ...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나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공동 현관에서부터 살짝 멀어진 순간 뒤로 누군가 따라붙었어요 진작 눈치챘지만 모른 척하고 쓰레기 봉지를 구석에 던져둡니다

 

나름 고급 아파트 단지라고 쓰레기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요 빠르게 걸음을 옮겨 돌아가려는데 정장 차림의 어떤 남자가 키세키의 앞을 가로막아요 ...울었나? 눈가가 빨갛게 부어올랐어요 저보다 앳되 보이는 얼굴 사회 초년생이려나 멋대로 짐작하려던 찰나 남자가 품에서 경찰 수첩을 꺼내 보입니다

 

키세키 쿄우 씨?

...

잠깐 얘기 좀,

사람 잘못 보셨어요

 

얼굴 익숙해 위험하다 최근 카쿠쵸가 경찰이 뒤를 캐고 다니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참인데요 어렴풋이 봤던 서류의 증명사진이... ...

 

당신, 알고 있어요

...

어째서인지 당신의 출생 정보는 어느곳에도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

꼭 누군가 지워버린 것처럼

더 할 말 있어?

네, 많으니까 저랑 잠시

뭐 때문에 나한테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

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가세요 그쪽도 죽여버리기 전에. 허... 나오토가 헛웃고는 자신을 지나쳐가는 키세키의 뒷모습을 바라만 봐요 지금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경찰한테 거처를 들킨 것 같아. 혹시 모르니 너희도 조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쿠쵸가 황급히 되물어요 지금 어디예요? 그 사람은 갔어요? 집이에요? 지금 갈게요. ...역시 이곳에 집이라는 단어는 과분해요 텅 빈 공간을 느릿하게 훑어보던 키세키가 눈을 감아요 잠시만이라도... ...

 

왔네

와야죠 그럼

굳이 위험하게

어차피 다 알고 있을 텐데요

 

얼굴 기억나요? 네가 준 문서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이름은? 따로 안 알려줬고 수첩에서도 그것까진 못 봤어. ...다친데는 없어요? 질문 순서 바뀐 거 너도 알고 있지? ... ...

 

그래요 카쿠쵸에게는 언제나 키세키가 아닌 다른 것이 우선이었으니까요 그게 명예든 야망이든 어떤 남자를 위한 평생의 충성이든... 키세키도 서운하다거나 슬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런 같잖은 감정을 가지겠냐며 단지 미련이 남는 자신이 혐오스러울 뿐이라면서요

 

이런데도 여전히 사랑해버려서 비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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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키 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웃는 게 예쁜 사람

그거 말구

...안 가리고 잘 먹는 사람?

 

아 출출한데 풀이나 뜯어 먹을까

카쿠쵸 왜 저래?

쟤가 저러는 게 하루이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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